- 게임을 "잘" 즐긴다는 것2023년 12월 13일 08시 39분 0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Taeyong, Lee.
그냥 생각나는 일을 적어보고 싶어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딱히 어떤 말을 카테고리로 적어도 어울리진 않아서 일기라고 썼는데,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각 나는 거나 깨달은 점 따위를 쓸 테니까 엄청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사실 뭐 취업을 위한 기술 블로그나 Terence Tao의 블로그처럼 수학 블로그 같은 걸 해보려 했는데, 지식량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무언가를 배우면서 동시에 정리해 나가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사사로운 이야기나 생활 얘기도 간간히 적어볼까 한다.
여러 가지를 취미로 즐겨왔지만, PC 게임은 꽤 오랜 시간 즐기고 있는 취미이다. 최근에는 로스트아크를 꽤 오랜 시간 했고, 그전에는 디아블로 3, 마비노기 영웅전 등을 꽤 깊게 했었다. 우리 세대에는 초등학교 막바지쯤에 대부분 온라인 게임을 접할 수 있었는데, 대체로 스타크래프트를 주로 플레이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컴퓨터를 사면 디아블로는 없고 스타크래프트만 있었다). 한 살 위 형들은 디아블로 2를 자주 즐겼으나, 내 친구들은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를 많이 즐겼다.
당시에도 경쟁하는 게임을 많이 좋아하진 않아서, 온라인으로 매칭하거나 할 때마다 괜히 긴장한 기억이 있다. 알겠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시작하면, 자신의 본진과 본진 땅만 보이고 나머지는 암흑이라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온라인이 활성화된 이후로는, 메이플스토리, 테일즈위버, 마비노기 같은 RPG를 주로 즐겼다. 뭐 딱히, 학교에서도 경쟁하는데 굳이 게임에서도 경쟁해야 하냐는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 쉬면서 긴장하게 되는 게 싫었을 뿐이었고, 시간 투자해서 뭔가를 성장시키는 게 재밌었던 거 같다.
결국, "친구"와 함께 하는 놀이가 즐거웠던 거라, 누군가처럼 깊게 게임을 즐기진 않았다. 주로, 친구들이 하는 유명 RPG를 했고, 게임 상에서 인맥을 새로 만들거나 하는 건 잘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 엄청난 팬심이 있다던가 자세하게 알진 않고,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 하는 공통 관심사로 생각했었다. 나에게 게임에서 가장 큰 과제는, 그래서, "잘 놀기"였다.
잘 논다는 것
갓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꽤 크게 고민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최소한의 갈등으로 최대한의 재미를 느끼는 법...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놀기 위해서 고민했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롤(LoL, League of Legends)이 엄청나게 흥행하기 시작했고, 팀에 대한 불신, 롤을 하면 본성이 드러난다 (또는 착한 사람도 악해진다)는 말 등등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롤 하는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글이 대학 커뮤니티에 엄청 많이 올라왔고, 나 또한 친구들과 가끔 롤을 하곤 했다.
나는 게임에는 재능이 거의 없거니와 잘하려고 노력조차 안 했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같이 게임하기 기피되는 대상이었다. 뭐...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이제 갓 스물을 넘거나, 수능이라는 큰 시험 직후인 스무 살이란 나이는, 우리나라에선 마음이 성숙하긴 힘들었기 때문에, 롤 하는 친구들 끼리는 강도 높은 비난이 오고 갔다. 결국, 친구에게 게임 못하면 하면 안 된다는 명언을 듣고, 이건 내가 생각했던 잘 노는 모습과 너무 거리가 멀다고 느껴서, 한동안 또 다른 취미인 기타에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동아리 방에 가고 하면서 은근히 서로 비교하는 일은 왕왕 있지만,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악기라는 건 취미 수준에서는, 연습을 얼마나 꾸준히 하고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는지가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곡이라는 것도 취향에 따라 모두 달라서, 목표도 달랐다. 나는 그 정도 수준의 취미를 원했었고, 동아리 성향이 운 좋게도 이것과 잘 맞아서 당시 생각한 "잘 놀았다"에 부합했다. 더군다나, 당시엔 마비노기 영웅전을 즐겼는데, 소울류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3D 액션 RPG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경향이 있어서, 가장 "잘 놀았던" 시기인 것 같다.
취미에서의 경쟁
대표적인 경쟁이 있는 취미인 롤과 없는 취미인 헬스. 지금 다시 돌아보면, 재미로 느낄 정말 중요한 요소가 경쟁이긴 하다. 경쟁이 아예 없는 경우엔, 너무 지루해서 진행조차 할 마음이 나지 않았고, 경쟁이 주된 경우 오히려 피곤해서 현실에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악효과가 생겼다. 많은 게임에서 차이를 만들어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수익을 올린다. 쉬운 예로는, 앞서 말한 롤이 있는데, 롤은 기본 적으로 레드, 블루 진영으로 팀을 나누고, 탑, 정글, 미드, 봇, 서폿의 포지션을 나눈다. 기본적으로 팀 내에서 매우 다른 사람을 탓하기 쉬운 구조이면서, 각 포지션 별로 (서폿 제외) 애매하게 차이를 두어 경쟁심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경쟁이 거의 없는 경우는 헬스를 생각할 수 있다. 헬스장에는 여러 사람이 같이 있지만, 각자 목표가 너무나도 다르다. 헬스장에는 보디빌딩, 체형개선, 다이어트, 체력 단련, 등의 여러 가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다 같이 있다. 바로 옆의 사람, 심지어 친구랑 같이하는 경우에도, 비교나 경쟁에 의미가 없다. 오직 나(의 몸)의 성장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과정 또한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헬스가 재미없는 데에는 여기에 있었다.
즉, 나는, 스포츠 급의 경쟁이 필요한 종목과 성장에만 몰두하는 종목, 이 사이의 무언가를 취미로 삼아야 했다. 그것이 RPG였다. RPG에는 어느 정도의 경쟁 요소도 있으면서, 엄청 강하지 않고, 성장이 필요한 이유도 있다. 또한, RPG는 협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지인과 커뮤니케이션도 또한 필요했다. 즉, "친구와" 놀기 또한 잘 만족할 수 있었다.
온라인 RPG을 잘 즐긴다는 것
RPG는 사실 꽤 개념이 넓어서, 역할극이 있는 모든 게임을 통칭한다. 하지만, 주로 한국에서는 역할극이 있으면서 육성하는 게임으로 인식되는 장르이다. 정말 어렸을 때 유행했던, 영웅서기도 또한 RPG이지만, 여기에서 중심으로 볼 것은 친구와 같이 노는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 RPG를 주로 볼 것이다. 부분유료화를 세계 최초로 적용한 넥슨에서 만든, 메이플스토리, 테일즈위버, 마비노기, 일랜시아, 바람의 나라, 아스가르드, 어둠의 전설 등이 초창기의 우리나라의 온라인 RPG이고, 최근에는 로스트아크, 파이널판타지 14,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 등이 주목받았던 온라인 RPG들이다.
마비노기 G2 당시 홍보 이미지. 무려 2005년 이미지. 물론 이 게임들만으로 이런 글을 쓰면 겜알못(...) 소리 듣겠지만, 일단, 최근에 큰 유행을 끄는 게임들과 과거에 큰 유행을 끌었던 게임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거라 경험이 어느 정도 다른 것은 양해하길 바란다. 이런 게임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과거에 유행한 온라인 RPG와 최근에 유행하는 온라인 RPG가 많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전통 RPG에 가까워서 협력요소가 강요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요구 시에 협력이 가능한 형태의 게임들이었다. 예를 들어, 테일즈위버, 마비노기, 일랜시아, 바람의 나라는 파티 플레이로 "쩔"이라는 형태로 친구를 돕는 개념이 있었고, 메이플 스토리 또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로스트아크의 군단장 레이드들. 반면, 현대의 온라인 RPG는, 와우를 기점으로 모르는 사람 또는 아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어려운 레이드를 클리어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로스트아크도 또한 시즌 2를 오면서, 군단장 레이드들을 매우 퀄리티 좋게 출시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대성공을 이루었다. 파이널 판타지 또한 대표적인 레이드 중심의 게임이다. 메이플 스토리도 또한 시대가 변화하면서, 레이드들을 퀄리티 있게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인기를 유지하려 했다. 반대로, 성장은 예전에 비해 그 난이도를 낮추고, 시간 투자를 적게 해도 가능하게 변모하여, 누군가가 도와주는 의미는 사실 많이 희석되었다.
이는 소비층의 성장에 따른 변화이기도 하지만, 경쟁요소가 거의 없어 성장동기를 주지 못했던 온라인 RPG의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거의 기울어가던 온라인 RPG를 다시 한번 부흥시켰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또한, 온라인 RPG를 잘 즐기기 위해 플레이 방식을 과거와는 다르게 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 자체를 안 좋게 볼 생각은 하나도 없지만, 마치 사회가 변화하면 새로운 형태의 가치관이 생겨나는 것처럼, 온라인 RPG 또한 옛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즐겨야 했다.
현대의 온라인 RPG는 필연적으로 매우 잦은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와우 공대장은 시간 조율과 20명가량의 인원 조절부터, 공대원의 위치, 스킬 사용까지 적절하게 분배할 줄 알아야 한다. 로스트아크는 매주마다 4~8명 정도의 시간을 맞춰야 하고, 초반엔 기믹 브리핑도 해야하고,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서, 적절한 공대 조합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잦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지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인데, 공대원 끼리의 작은 갈등이 씨앗이 되어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거의 온라인 RPG에서는 이럴 일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클리어를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이 공대에 있다기보다, 개개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았고, 남을 돕는 구조의 게임이 충분히 가능했으며, 레이드 중심의 게임이 크게 성행을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의 온라인 RPG는 굉장히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동시에, 클리어의 책임이 한 사람에게 있는 경우가 많고, 남의 잘못을 커버하는 구조가 거의 불가능하며, 클리어에 대한 기여를 너무 간단한 구조로 (예를 들면, 로스트아크의 투사, 강직한 투사, 잔혹한 혈투사 시스템) 제시함에 따라 불필요한 경쟁심을 유발한다.
결국, 이런 레이드 위주의 온라인 RPG를 "잘 즐기기" 위해서, 적절한 경쟁심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동시에 주위 사람도 또한 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뜩이나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시대에, 친구 또는 지인들과 고정 공대를 구성하면서 이런 사소한 차이까지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현대 온라인 RPG에서는 의사소통 능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어떤 사람과 잘 맞아 생산력이 높아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안 맞는 사람과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한 자신만의 방어기제나 노하우를 실험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친구와 잘 놀면서, 긍정적인 면을 취하려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을 추천한다.
잘 노는 모습
나는 게임 방송을 상당히 많이 보는 편이다. 어렸을 적 아프리카 TV가 성행했을 때부터 게임 방송을 많이 봤고, 거의 30세에 가까운 지금까지도 게임 방송을 상당히 많이 본다. 하지만, 예전부터 게임 실력이 좋은 사람을 보는 것보다 "같이 잘 노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방송을 봤다. 게임을 "잘 즐기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팔로우를 하는 편이다.
그들은 생계로, 게임을 "잘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 방송 분위기를 함부로 다운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그들의 수익에 지속성이 생긴다. 게임이 조금 아쉽더라도, 같이 한 동료들과 그 상황을 어떻게건 잘 풀어나가야 한다. 나는 이 전체 과정이 우리들이 게임을 "친구들과 같이" "즐기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 아프리카TV, 유튜브. 그들이 방송에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다. 사실, 이것을 깨닫는 것에도 6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예전까지만 해도, 나는 왜 저렇게 취미를 재밌게 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없을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업으로 삼으면서, 다른 사람과 재밌게 즐기는 과정을 라이브로 보여줘야만 하고, 더군다나 그 모습이 재밌어, 사람들에게 선택받아야만 한다. 즉, 저런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에서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나의 경험과 유사할 때, 같이 잘 노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즉, 그들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예시들이, 우리가 취미를 즐길 때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답안들이 되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각자가 생각하는 같이 잘 노는 모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모습을 담는 사람들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잘 관찰하고,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지 파악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치며
제목을 "게임을 잘즐긴다는 것"으로 지었지만, 더 나아가서는 취미를 잘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된 생각이다. 많은 지인들이 "취미"를 가지고, 짧게는 3,4년 길게는 평생을 즐긴다. 만약에 내가 게임 실력이 좋았거나, 인문학적으로 뛰어났다면, 평생동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았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나에게 게임을 잘한다는 건, 현란한 컨트롤이나, 실력이 좋다는 의미와는 조금 멀고, "잘 즐기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여 생각해보고 싶었다. 물론, 실력이 좋으면, 잘 즐기기 쉽다. 본인의 실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면, 상대적으로 안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지 않을 수 있고, 이는 잘 즐기는 것을 굉장히 쉽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실력이 안 좋다면, 잘 즐길 수 없는 취미일까. 수많은 선례들이 보여줬듯이, 그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대신에, 어려운 상황에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취할지 고민하고, 소통을 통해 갈등 상황을 즐거운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또한 즐거운 취미로써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실력으로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나는 실력 이전에, 게임을 하며 "잘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나에겐 온라인과 경쟁이라는 생각에 가려져 그 노력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정사항
제목 수정 및 문맥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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