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보드를 찾아보자; 재료부터 사는 첫 커스텀?2024년 01월 02일 03시 10분 5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Taeyong, Lee.
뭐든 처음 찾게 되면 극단까지 찾게 된다. 커스텀 키보드를 찾다 보니 여러 DIY 키트들을 찾게 됐다. 하지만 더 싸게 찾아보니, 오픈 소스로 PCB와 케이스 도면을 공유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당시에 졸업을 앞에 두고 있던 상황이라, 시간도 조금 남았다. 뭐 만들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싼 수준에서 시작해볼까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일단, 처음에 세운 기준은 간단했다.
- 스플릿 키보드.
- 키보드 틸팅 (가운데 부분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 문자 키와 숫자 부분을 지정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키 수가 있어야 함 (최소 60%).
나는 충분히 대중적으로 쓸만한 선에서 타협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것보다 매니악한 키보드를 쓰고 싶지 않았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키보드들은 키 수가 정말 많이 적었고(40%~ 수준이 많았다.), 틸팅은 케이스에 나사 같은 걸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격은 20-30만 원 정도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틸팅이 들어가면 5만 원 정도를 추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 생각엔 너무 비쌌다. 스위치도 없고, 키캡도 없는데 35만원이라니. 더해서, 커스텀 키보드는 한정판매가 대부분이라, 적합한 상품을 찾아도 구매할 수 없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이 점은 아직도 잘 이해하기 어렵긴 하다.
어쨋거나 당시에는, DIY 키트 중엔 테스트하고 싶은 게 거의 없었고, 조금 극단적이게(...) 오픈 소스에서부터 만드는 걸로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커스텀 키보드는 Dactyl manuform이 됐다.
오픈 소스라니까?
그렇다. 앞서 말한 것처럼, Dactyl manuform은 이런 식으로 만들면, 손목에도 좋고, 디자인도 좋다는 Matthew Adereth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Tom Short가 변형하여 더 활성화한 오픈 소스이다. 오픈 소스라서, 단순히 검색해도 여러 발전된 형태들을 찾을 수 있다. 각자 생각에 맞게 키보드 각도를 바꾸거나, 키를 늘리거나 줄이는 경우도 많고, 손목 받침을 케이스에 부착하거나, 두 개를 붙여서 Alice 배열로 바꿔버리거나 하는 변형들이 엄청 다양하게... 발전해 있었다. 문제는, 처음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걸 만들어야 할지 큰 고민이었다.
엄지에 필요한 키는 몇개인지, 처음 쓰는 Column-staggered 키보드는 익숙해질 수 있을지, 어떤 주의할 점이 있는 지도 모르는 채였다. 뭐가 됐던, 써봐야 아는 문제들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 조건에 맞는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몇 개의 키가 필요할까?
먼저, 몇개의 키가 필요할지 고민해 봤다. 문자와 숫자는 총 46개의 키에 할당되어 있다. 그리고, 자주 쓰는 세미콜론 및 콜론(;, :), 그리고 대괄호 및 중괄호([, ], {, }), 마이너스 및 밑줄(-,_), 플러스 및 등호(+, =), 백슬래쉬(₩), 캡스락, 탭, esc, ~(tilde), 엔터, 윈도우 키, 한영, 컨트롤, 알트, 시프트 키가 필요하다. 이 키들을 합치면, 15개이고, 나는 총 61개 정도의 키를 필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듯 했다. 그래서, 스플릿 키보드를 고려해서 5x6 키보드를 구성하기로 했다. 각자 엄지키 5개가 있어서 70개의 키를 할당할 수 있었다.
아주 나중에 깨달은 주의 사항을 몇 개 적으면,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오른손으로 모음 "ㅠ"를 입력하고, 왼손으로 "b"를 입력하게 배운다. 그래서, 스플릿 키보드 양쪽에 b키가 할당될 수 있는 배열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방향키를 할당할 수 있는 충분한 키가 필요하다. 그래서, 각자 플레이 할 게임에 맞게 키보드 레이어를 세팅할 각오(?)를 하거나, 다른 키보드 배열을 찾는 게 적절하다. 그리고, 키보드에 정말 진심이 아닌 이상, 레이어 4개 이상 외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레이어 3개 내로 필요한 키가 전부 할당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납땜질을 하기 싫어요.
요즘에도 초등학생에게 이런 활동을 권장하는 지 모르겠는데, 나는 과학상자나, 라디오 만들기 활동을 매년 참가했었다. 과학상자는 레고같이 여러 부속들로 여러 가지 결과물을 만드는 활동인 반면, 라디오 만들기는 PCB를 제공하고, 그 위에 각 부속품들을 직접 납땜질을 해서, 작동하는 라디오를 만들면 되는 활동이다. 문제는 납땜질이었다.
납땜기는 주로 380~410℃의 엄청나게 높은 온도를 사용한다. 오랜 시간 사용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맨손으로 고열인 부분을 만질 때가 있다. 지금은 목공 장갑을 사용해, 혹시나 실수해도 장갑이 대신 타게 작업을 하지만, 당시의 나는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장갑 없이 진행했고, 매년마다 한 번씩 엄지손가락에 화상을 입어 물집이 잡힌 기억이 있다. 납땜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꺼려지게 되는 작업인 건 사실이다.
PCB 기판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커스텀 키보드들과 다르게, Dactyl manuform은 손가락의 위치를 고려하여 키보드가 안쪽으로 굽어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평평한 PCB 기판을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케이스에 스위치를 꽂고, 다이오드를 스위치 다리에 직접 연결하여 키보드의 행과 열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평평한 PCB 판 위에 납땜질하는 것도 꺼려지는 마당에, 전선 납땜질로만 이루어진 작업은 너무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가, 레딧의 유저 atlantesque 게시물에서 매우 깔끔한 형태의 방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품을 하나씩 구매하자.
본래는 위의 왼쪽 그림과 같은 형식의 연결을 직접 다 납땜하여야 한다. 스위치에 직접 납땜하는 방식이라 핫스왑(키보드 스위치를 쉽게 변경하게 해주는 기능)도 불가능하고, 초보자가 하기엔 와이어 구성도 많이 복잡하다. 하지만, 위 유저가 만든 방식은, 오른쪽 그림과 같이 각 칸에 스위치 하나를 위한 PCB를 각자 설치하여, 커스텀 키보드 DIY 키트에서 많이 지원하는, 핫스왑도 지원할 수 있고, 와이어 연결도 직관적이었다. PCB 설치도 글루건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쉽게 나사로 고정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케이스 파일과 밑판 파일을 얻고, 그리고, PCB를 모두 구하여, JLCPCB에 맡겨, 배송비 포함 대략 $60 정도 나왔다. PCB 판도 5장씩 줘서, 꽤 여유 있게 줬다. 그리고, C 타입 선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컨트롤러(Micro controller unit, MCU)는 C 타입이 있는 것으로 구매하였고, 두 스플릿 키보드를 이어주는 것은 TRRS 잭을 이용하였다. 컨트롤러는 Pro micro C 타입으로 4개에 $18.80, TRRS 잭은 배송비까지 2천 원 정도에 구하였다.
그리고, 나사, 코일 케이블, 인서트 너트, SMD 다이오드 등을 포함해서 만원 정도 더 들었다. 주로, 커스텀 키보드 DIY 키트에는 스위치와 키캡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여기까지 합하면 넉넉하게 $85 정도 들었고, 대충 한화로 11만 원 정도에 모든 부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품이 필요량 이상으로만 주문 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욕심이 있었다면 2세트의 키보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1세트의 키보드는 대충 5-6만 원 정도면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배송 기간이었다. 재료가 정말 많은 온라인 사이트에 산재되어있어서, 한 사이트에서 모두 구매하는 게 불가했다. 그러다보니 배송 기간이 제각각이었고, 정말 오래 걸린 건 2달이나 걸렸다. 부품을 하나씩 구매하는 생각은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키보드를 만들다가 부품이 없어 중단된 적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이후엔 커스텀 키보드는 키트로 사기로 했다.
만들었다.
첫 키보드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주의사항만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 납땜은 확실할 때 하자.
- (있다면) 다이오드 다리를 이용하여 미리 플래싱 해서 확인할 수 있다.
- 납땜질 많이 안 해봤으면, 장갑 끼고 하자.
- 너무 비싸지 않다면..., 키트로 사자.
여러 키 조합들을 사용해 본 결과 아래와 같이 배열하는 것이 가장 나에게 잘 맞았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b"키는 양쪽에 있어야 했다.
몇 달 써봤다.
스플릿 키보드로 어깨를 아예 펴고 타이핑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봤더니, 정말 쾌적했다. 어깨가 긴장상태에 있지 않으니, 오래 타이핑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Dactyl manuform에서 강조하는 concave 한 모양(각 키보드 가운데가 움푹 파 들어가 있다.) 덕분에 손가락 동선이 키보드 위나 아래로 갈 때 크게 변하지 않아 편했다. 키보드가 좀 높아서, 손목 받침대가 필요하긴 한데, 다이소에서 2천 원이면 두 개 구매할 수 있는데, 이동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추천한다.
다만, 게임할 때는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나는 게임 별로 레이어 할당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키보드마다 키를 외우기는 좀 어려워서), 핵심적인 기능만 넣어놨는데, 아무래도 방향키를 다른 레이어에 지정하니, 방향키가 필요한 게임을 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됐던, Column-staggerd 배열은 의외로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기존에 많이 쓰이는 Row-staggered 배열 키보드와 바꿔가면서 쓰면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금방금방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Column-staggered 키보드를 오래 사용하니 손이 거의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기존에 사용하는 Row-staggered 키보드의 경우 꽤 많은 경우, 손목을 수직으로 꺾게되는데, Column-staggered 키보드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다만, 다른 작업과 병행할 때, 기존에 쓰던 키보드를 그대로 쓰는데, 서로 번갈아 사용하면 적응할 시간이 조금씩 필요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장점
- 손목이 꺾일 일이 거의 없다.
- 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타이핑과 여러 작업이 가능하다.
- 안쪽으로 파여있어서 키 입력 시에 손가락을 많이 길게 뻗거나 할 일이 거의 없다.
단점
- 기존의 Row-staggered 키보드와 번갈아가서 사용 시에 조금 적응기가 필요하다.
- 너무 높아서 손목 쿠션이나 손목 받침이 거의 필수적이다.
-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다.
다른 건 어떨까?
Column staggered 키보드가 궁금하기도 하고, 직접 부품을 다 구매하니, 부품도 많이 남아서, 다른 키보드도 찾게 되었다. 그렇게,
Ergodash도 만들었다.
아무래도 게임할 때 너무 불편하다.
일단, 너무 무거운 건, Ergodash를 사용하면서 해결되었다. 하지만, 방향키를 방향키 모양대로 할당할 수 없는 게 게임할 때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게임과 문서작업 그리고 코딩을 할 때마다 키보드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래서, 키보드에 "방향키"를 포기하지 않는, 스플릿 키보드를 찾고자 했다. Column-staggered 인지, Row-staggered 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Ortholinear만 아니면 괜찮았다.), 게임하면서 불편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방향키가 방향키 위치 근처에 그 모양대로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키트를 사더라도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키보드를 만들고자 했다.
이번에 사야 하는 키보드는, 스플릿 키보드는 위에서 깨달은 점까지 더하면,
- 방향키가 있어야 한다.
- 스플릿 키보드이고, "b" 키가 양쪽에 있어야 한다.
- 70 키 이상이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런 키보드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사이트를 찾게 된다.
수정 내역
[2024.01.02] 배송이 오래걸렸다는 내용을 추가 및 문맥 수정.
'주저리주저리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보드를 찾아보자; DIY 키트를 사자 [MechWild Mokulua 키보드] (0) 2024.06.29 키보드를 찾아보자; 어쩌다가... (0) 2023.12.25 게임을 "잘" 즐긴다는 것 (0) 2023.12.13 이전글이 없습니다.댓글